비발디에 대하여 많은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사실이 있습니다.
비발디의 사계는 20세기에 들어와서야
본격적으로 연주되기 시작하였습니다.
정확하게 말해서 1950년대 이후라는
사실입니다.
놀랍지 않습니까?
오래전 부터 계속해서 연주되고
감상되어져 왔으리라고 생각할 텐데요
전혀 그렇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왜일까요?
비발디는 빨간 머리의 사제라는 별명이
붙어 있는데요 그가 왜 그렇게 오랜 기간
많은 사람들의 뇌리에 잊어졌다가 뒤늦게
알려지게 되었는지 알아보겠습니다.
비발디는 1678년 이탈리아 베네치아(베니스)에서
출생합니다.
당시 베네치아는 유럽 최대의 무역항구 중 하나로서
많은 노동자들과 사업가들이 드나드는 대단한
상권이었습니다.
많은 돈이 거래되는 곳이다 보니 유흥가가 성행하였고
그에 따르는 문제점도 많이 있었겠지요.
그의 어머니는 비발디가 임신하고 있을 때 베네티아에
큰 지진이 발생합니다.
지진의 충격과 고통으로 비발디는 만삭되지 못하고
태어나서 몸이 무척 허약하였습니다.
또한 영양결핍인 것처럼 머리카락 색깔도 빨간색으로
자라났습니다.
당시 빨간 머리카락은 아이들에게 놀림감이 되었습니다.
비발디 아버지는 이발사를 하면서도 바이올린 연주를
곧잘 하였습니다.
나중에는 바이올린 연주를 잘하여 성당 합주단에서
연주를 하였는데 아들에게도 바이올린을 가르쳤습니다.
비발디는 바이올린과 작곡에 재능을 보였지만 늘 몸이
약한 것이 걱정꺼리였습니다.
비발디 아버지는 아들이 너무도 허약하여 일찍 죽을까봐
하느님께 “아들을 살려주신다면 사제로 키우겠습니다”라고
서원을 하여 결국 사제가 됩니다.
아버지의 바람에 따라 사제가 되지만 곧 바로
어려움이 닥칩니다.
그는 천식으로 병약하여 미사를 집전하지 못해
사제로서의 자격이 무색하였습니다.
할수없이 사제단의 결정에 따라1703년 베네치아에
있는 피에타 고아원(오스페달로)의 음악원에서
바이올린 교사가 됩니다.
그곳에서 고아나 사생아 소녀들을 교육시켜
합주단을 만들어 교황 앞에서 연주를 할
정도로 유명하게 됩니다.
베네치아는 서술한 대로 유흥가가
많아서 사회적 문제가 많았는데요
그 중에 하나가 고아와 사생아가
많았다는 사실입니다.
이들을 교육시킬 필요가 있었는데 캐톨릭이
융성했던 이탈리아 베네치아에서 음악을
통한 교육이 필요함을 알고 고아와
사생아들을 위한 음악교육을 많이
시켰습니다.
당연히 교회에서 이러한 일을
맡아서 하였습니다.
이러한 공로로 음악감독이 되지만 그의 음악에
대한 열정은 당시 카톨릭의 엄격한 규율에도
불구하고 오페라를 작곡하여 연주여행을
다니게 됩니다.
하지만 그는 신부의 신분으로 그가 키운
성악가(안네 지로)와 관계를 의심하는
교회측의 반대로 그의 음악활동은 제약을
받게 됩니다.
결국 베네치아를 떠나 그의 후원자의
도움을 받으러 빈으로 갔지만 후원자
오스트리아 국왕은 그가 오기 직전에
사망하여 비발디는 빈에서 가난한
말년을 보내게 됩니다.
1741년 그의 나이 63세로 쓸쓸하게
사망하여 그의 존재는 잊어지게
됩니다.
사실 바흐는 비발디의 천재성을
알아보았습니다.
비발디의 악보를 보고 그의 악보를
편곡하여 갖고 있었습니다.
시간이 흘러 바흐의 곡을 찾는
음악인들이 생겨났는데 우연히
1930년에 바흐의 곡이 발견되었는데
그의 작품속에서 비발디의 작품이
발견되었습니다.
바흐의 곡 속에 비발디의 작품이라 ~
음악의 아버지가 칭하는 대단한 바흐가
가치를 인정하여 편곡까지 했던 비발디의
발견입니다.
바흐는 비발디를 자신의 롤모델로 삼아
공부하고 그의 작품을 흠모하였는데요
그의 많은 작품을 연주하고 또 자신의
좋아하는 건반악기로 편곡하기도
하였습니다.
대표적인 곡이 '화성의 영감'이라 이름
붙여진 6곡을 쳄발로 곡으로 편곡하여
연주하였습니다.
(하지만 사계 작품은 비발디의 원곡
그대로 존중하였습니다.)
1927년부터 300여 개의 비발디 악보가
발견되면서 비발디의 사계는 햇빛을
보게 되었습니다.
당연히 그의 음악이 연구되면서 우리에게
사계가 널리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1950년데 이무지치 연주단이 녹음을
시작으로 많은 연주가가 즐겨 연주하는
레퍼토리가 되었고 시간이 흐르면서 비발디는
유명 음악가로 자리 매김하게 되었습니다.
비발디의 ‘사계’는 원래 1725년 출판한 ‘화성과
창의에의 시도’의 12곡의 협주곡 중
1번에서 4번까지인데요.
이 부분이 유명해지면서 사계부분만 별도로
연주하게 되었습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모두 3악장으로 이루어졌는데요
급완급 즉 빠르고, 느리고, 빠른 템포로 연주합니다.
특별히 솔로와 합주가 번갈아 가면서 반복하여 연주하는
리토르넬로 형태로 연주합니다.
그의 사계는 사계절의 다양한 모습을 표현한
풍경화처럼 다가옵니다.
사계를 듣고 있으면 이미지가 떠오르고 상상의
나래를 펴고 추억의 공간으로 이동하고 그곳에서
쌓았던 스토리가 풍성하게 얻어지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많은 클래식 곡 중에서 비발디의 사계만큼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곡도 많지 않을 것입니다.
그를 평하여 천편일률적이라고 혹평하는 음악인들
조차 사계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정도로 위대한 작품입니다.
비발디는 마치 바로크 시대의 헤미메탈이라고도 할 수 있을
정도로 리듬미컬하고 강한 음악을 만들기도 하였습니다.
비발디의 '라 폴리아'를 들어보면 그의 열정의 음악속에
어떻게 담겨져 있는지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사계 전체 악장은 각각 3악장이기에 12악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요 어떤 악장도 소홀히 대접받지
않고 있습니다.
많은 연주자들에 의해서 클래식은 물론 가요나 팝으로 편곡되어
널리 사랑받고 있습니다.
겨울의 2악장을 이현우 가수가 사용하여 곡을 만들기도 하였고요
바네사 메이르 비롯하여 많은 전자 바이올린 리스트들이
여름의 스톰 부분이나 겨울의 1악장을 많이 연주하고 있습니다.
계절의 향기가 물씬 풍기는 그의 음악은 우리의 오감을 한층
업그레이드 시켜 줍니다.
그리고 과거로의 여행은 물론 아직 오지 않은 계절 앞에서
다가올 계절을 기다리게 만듭니다.
그는 13세기 이탈리아 민요에서 파생한 정형시의 일종으로
14행의 1연으로 된 소네트(작은노래라는 의미, sonnet)라는
짧은 시를 바탕으로 음악을 만들었는데요 당시로서는
혁신적인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는 시대를 앞서간 작곡가라 할 수 있습니다.
아직 표제음악이 존재하기 이전에 낭만파시대에는
있을법한 표제음악을 시도했다는 것은 파격적인 것입니다.
고전파에서도 시도하지 않았던 표제음악을 사계에서 시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봄의 1악장은 활기찬 E장조로 하여 새소리, 바람소리,
시냇물소리와 천둥소리를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제 사계 중 봄의 1악장을 감상해 보겠는데요
그가 썼을 것으로 추정하는 시(sonnet)와 시에 맞는
영상과 함께 감상해 보시겠습니다.
따뜻한 봄이 왔다.
새들은 즐겁게 아침을 노래하고 봄이 찾아온 것을 환영한다.
시냇물은 나부끼는 산들바람에 부드러운 소리를 내며 흘러간다
갑자기 하늘은 어두어지고 번개와 천둥소리로 요란하게 봄을 알린다.
어느새 구름이 걷히고 작은 새들은 또다시 아름다운 곡조로 봄을 노래한다.
유튜브 영상에서는 음악에 맞게 제가 시를 추가해 보았습니다.
유튜브를 통해 확인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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