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갑습니다.
오늘은 첼로 곡으로 유명한 자클린의 눈물을 감상해 보시겠는데요
이 곡은 깡깡춤으로 유명한 오펜바흐의 곡입니다.
자크 오펜바흐(Jacques Offenbach, 1819-1880)는 13세 때 파리 음악원에서 첼로를 전공하여 관현악단에서 첼로 주자로 활동하였고, 나중에 지휘자와 작곡가로서도 명성을 높이게 됩니다. 그는 90편의 오페레타(희가극)를 작곡하였는데요
대표작으로는 <천국과 지옥>과 <호프만 이야기>가 있습니다. 깡깡춤은 <천국과 지옥>에 나오는 곡입니다.
그는 첼로 연주자로서 첼로 곡도 많이 작곡했는데요 오늘 감상할 <자클린의 눈물> 외에도 저녁의 선율이나 하늘 아래 두 영혼 등이 유명합니다.
독일 출신의 첼리스트 베르너 토마스 미푸네(Werner Thomas-Mifune, 1951- )가 오펜바흐의 미완성 곡들을 정리하다가 발견하게 되는데요 그는 이 곡을 ‘자클린의 눈물’이라는 이름으로 연주하여 발표하게 됩니다. 사실상 자클린 뒤 프레에게 헌정한 셈이지요.
자클린 뒤 프레(Jaqueline Du Pre)는 1945년 영국 옥스퍼드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녀의 나이 5세 때 라디오에서 오케스트라 악기를 소개하는 시간에 첼로 소리에 빠져 엄마에게 첼로 소리를 내고 싶다고 하며 첼로 공부를 시작하게 됩니다.
그녀는 천부적인 음악 재능으로 당시 유명한 윌리엄 플리스에게 본격적으로 지도를 받게 되는데요 그녀는 플리스를 ‘첼로 대디’라고 부르며 평생 가장 위대한 스승으로 모셨습니다.
이후 세계적인 첼리스트 파블로 카잘스와 로스트로포비치의 지도를 받으면서 ‘거장급의 천재 소녀’, ‘ 영국의 장미’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유명해지게 됩니다. 이제 그녀는 로스트로포비치에게서 ‘자신을 뛰어넘을 첼리스트‘라고 극찬을 받을 정도로 대단한 연주 솜씨를 발휘하며 20대의 젊은 나이에 거장의 반열로 올라서게 됩니다.
영국은 클래식에 대한 자부심이 높지 않았습니다. 위대한 작곡가가 없기 때문입니다. 에드워드 엘가가 있기는 했지만 그의 유명한 작품은 ‘사랑의 인사’나 ‘위풍당당 행진곡’ 같은 소품이었습니다. 그런데 자클린은 초연 실패 후 인기가 없던 엘가의 첼로 협주곡을 명곡으로 탄생시켜 영국인들에게 큰 자부심을 안겨주었습니다.
1962년 17세에 BBC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엘가의 첼로 협주곡을 연주하면서 일약 대스타가 됩니다. 1965년 그녀의 나이 20세에 EMI에서 지휘자 존 바비롤리와 함께 엘가의 첼로 협주곡을 레코딩 하면서 전설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녀는 사람들이 눈물을 흘리며 감동할 정도의 명연주를 하였습니다.
그녀를 지도했던 파블로 카잘스가 그 연주를 보고 눈물을 흘렸고요 로스트로포비치는 자클린과 같은 명연주를 할 수 없다며 자신의 레퍼토리에서 아예 삭제하여 버렸습니다.
이제 그녀가 가는 곳곳마다 기자들이 따라다녔고 그에 대한 기사는 사람들의 관심거리가 되어 음악계는 물론 대중적인 대스타로 올라서게 됩니다. 그녀에 대한 소문은 영국을 넘어 전 세계로 널리 알려져 연주 무대도 세계로 뻗어나갔습니다.
런던 필하모닉, 뉴욕 필하모닉 등 세계 최정상급 오케스트라와 협연을 하였고, 에후디 메뉴힌, 이츠하크 펄만, 핀커스 주커만 등 당대 세계 최고의 바이올리니스트와 함께 연주할 정도로 최정상을 달렸습니다.
1967년 22세에 다니엘 바렌보임과 결혼을 하는데, 당시 자클린의 명성이 너무 높아서 다니엘 바렌보임을 비난하기까지 하였습니다.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은 많은 사람의 이목을 사로잡았고, 다니엘 바렌보임과 함께 연주하며 인생 최고의 시간으로 채워나갔습니다. 레코딩과 연주로 바쁘게 살던 1971년 26세가 되던 어느 날 그녀에게 청천벽력 같은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뇌와 척수 신경의 손상으로 오는 다발성 경화증 진단을 받게 된 것입니다. 이제 연주는 물론 기본적인 생활도 점차 힘들어집니다. 결국 연주회에서 활을 놓치는 치명적인 실수까지 반복되면서 28세의 젊은 나이로 은퇴를 선언합니다.
이제 그녀는 연주자가 아닌 교육자로 변신하지만 그것조차도 힘들어 더 이상 정상적인 생활을 하지 못하게 됩니다.
그녀는 큰 결심을 하게 됩니다. 젊은 남편인 다니엘 바렌보임이 자신에게서 멀어지고 있음을 직감하고는 그에게 이혼을 제안하여 새로운 사람을 만날 수 있도록 배려합니다. 하지만 법률적으로는 그녀가 죽을 때까지 부부로 살게 됩니다.
바렌보임을 떠나 보냈지만, 그녀의 마음은 여전히 그를 사랑하고 있었습니다. 자신의 묘비에 다니엘 바렌보임이 사랑했던 아내(Beloved Wife of Daniel Barenboim)라고 적어달라고 유언을 남길 정도로 그를 사랑하였습니다.
이제 그녀의 몸은 스스로 움직일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얼굴을 움직이거나 눈물을 흘리는 것조차 힘들 정도로 박제 같은 몸으로 변해갔습니다.
하지만 수프를 목으로 간신히 넘길 정도로 약해진 상태에서도 자신이 젊은 시절에 레코딩 했던 곡을 들으면서 기뻐하였습니다. 그렇게 자신의 아픔을 원망하지 않고 참아내면서 하늘나라를 소망하며 살다가 1987년 42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다음의 예화는 그녀가 얼마나 긍정적인 사람인지 보여줍니다.
그가 바렌보임과 드보르자크 첼로 협주곡을 연주하는 도중 강렬한 연주에 의해 첼로 줄이 끊기는 사고가 발생하였습니다. 그러자 그녀는 침착하고 편안한 목소리로 청중들에게 줄을 갈 2분간만 시간을 달라고 합니다. 청중들은 우레와 같은 박수를 보내며 그녀의 침착한 여유와 긍정적인 자세에 보답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그녀를 보고 비운의 천재라고 하지만 그녀는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거나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마지막 숨을 쉬는 순간까지 자신보다는 다른 사람을 생각했고, 자신보다는 남을 위해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녀가 연주했던 1712년산 ‘다비도프’ 스트라디바리우스는 후에 요요 마가 연주하면서 그녀의 연주 기운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그녀가 남긴 것은 위대한 첼리스트의 음반만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끝까지 자신의 운명을 탓하지 않고 늘 감사하며 긍정적으로 살았던 점을 높이 평가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 삶이 아무리 힘들고 어려울지라도 그녀와 같이 긍정적으로 감사하며 살아야 하지 않을까요?
이제 ‘자클린의 눈물’을 감상해 보시겠는데요 저는 이 곡에 노래 가사처럼 시어를 달아보았습니다. 이 시어를 통해 그녀의 아픔과 메시지를 음미하면서 우리 자신의 삶을 긍정적으로 돌아보는 시간을 갖기를 원합니다.
내 손발 내 몸에서 어느 것 하나
맘대로 편하게 옮길 수 없네
내 마음 속 희망 다 사라져도
끝까지 사랑하리라
어린 시절 화려한 나의 재능도
젊은 날 한순간
다 무너져 내리고
지금은 한낱 추억으로
아련하게 기억 속에 있네
한때 내게 꿈같은 시간들
이젠 없네
수렁으로 내려가
고통의 멍에 지고 있구나
마비된 내 손발 가엾은 신세
누군들 내 아픔 알 수가 있을까?
내 고통 눈물 되어 흐를지라도
나는 원망하지 않으리라
행복한 시간 떠나갔네
나의 꿈도 남김없이 사라졌도다
내 사랑마저 떠나갔네
내게 남은 희망 이젠 전혀 없구나
홀로 남은 텅 빈 마음만이
박제 같은 병든 몸만이
마지막 호흡 다하여
끝날 때까지 사랑하리라
<중략>
마지막 희망 다 사라져 내가 없어질지라도
난 사랑하리라
나는 사랑하리
나는 결코 울지 않으리
이제 유튜브 영상에서 만나보시죠?